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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흉년 Blue Jay Way

여행기가 흉년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당췌 읽을만한 여행기가 없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출판되는 책들까지, 펼쳐놓고 읽다 보면 금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답답한 내 마음 때문에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누군가 여행기를 읽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기란 이렇다. 자신의 기분이 어땠는가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여정이 어땠는가(혹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주로 말해야 한다. 하지만 여행기를 쓰는 것과 여행 일기를 쓰는 것을 착각하면 참으로 곤란하다. 자신이 겪은 여정은 물론 무엇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한 기억이겠지만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전부 적어버릴 필요는 없다. 이야기하는 본인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자신을 마치 현지인이양 그 속에 완전히 녹아든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만인 것이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상에 대해서는 여행지에 도착하여 걷고 떠나는 발걸음을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발 디딘 곳을, 그 곳의 사람들은 포근하게 바라보는 눈길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그런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진정 포근한 눈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눈가 근육을 포근하게 만들어 바라본 것 뿐이었는지에 대한 것은 어떻게든 속일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진을 많이 줄이고 글 자체에 집중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진집이 아닌 이상에야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을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다고 요즘 많이 나오는 사진 가득한 여행 이야기 책들에 실린 그것들이 그렇게나 퀄리티가 높은가, 하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 사진만 주욱 펼쳐놓는 여행기를 보는 것은 인터넷에 지천인 개인 블로그에서도 충분하다. 사진을 위한답시고 전체 컬러로 고급스럽게 인쇄되어봐야 그저 책 가격만 높아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돈 주고 사서)읽은 여행기 중에 가장 심각했던 책이 한 권 있는데, 위에 말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며, 사진은 건질만한 것이 1/10 정도 되고, 올컬러에 매끈한 코팅지를 써서 종이질은 좋아 보이지만 책이 무지 무겁고, 그런고로 상당히 비싸다. 거기에다가 글자체까지 일반적인 책에 쓰이는 것과 다르고, 글자 간격을 손대서 양을 상당히 부풀렸다. 좀 치사해 보인다. 최근 내가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들을 펼쳐 보다가 느낀 불안감은 이런 것이었다. 그 때 그 책을 꾸역꾸역 읽으면서 느낀 답답함, 불쾌함, 무료함 같은 것들을 데자뷰처럼 돌이켜 버린 것이다. 만약 이 책을 돈 주고 산다면 돈 주고 산 최악의 여행기 1위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할 수 있겠구나 싶은 것들이 무려 두 권이나 있었고, 다른 책들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괜히 흉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한 때 황금기가 있었다. 서점에 가면 읽고 싶고 가지고 싶은 멋진 여행기들이 가득했고, 일부러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대충 느낌이 괜찮은 것을 집어와도 왠만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좋은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는 류시화의 인도 이야기가 거짓말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 책을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즐겁게 꿈꾸게 해 주었으니까. 여행기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고 생각한다. 여행기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현재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는 자체로 짜릿하고 즐거운 멋진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 여행기를 써 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여행기를 읽고 꿈꾸는 그 감각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나는 아마 평생을 두고 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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