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는 태양이 사그라지고 하늘이 예쁘게 물들 즈음에야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더운 건 정말 못 참는다.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로 향할 때 그 상쾌한 기분으로는 '오늘 아유타야를 정복하고 말겠어 기다려 아유타야' 이러고 있었는데, 그냥 보고 싶은 것 하나만 보고 대충 시간을 때우자는, 플랜G쯤 되는 급선회를 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갖 여행기를 찾아 읽던 시절에 읽었던 한 여행기가 있었는데, 그 저자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팜플렛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며 소개한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한다. '애잔'하다고. 난 이때 애잔하다는 표현을 처음 배워서 나중에 뭔가 서정적인 표현을 써야겠다 싶으면 십중 일곱 정도는 '애잔'을 남발하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에게 있어 '애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유물이 아유타야에 있었다.
실제로 보니 그리 애잔하던가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았다 대답해야겠지만, 아마 그 때 꼬꼬마 시절에 일부러 아유타야를 찾아가 내 가진 '애잔'함의 원형을 이렇게 목격했더라면 아마 나는 실제로 감동하지는 않더라도 눈물을 흘리려 부단히 노력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 어렸던 시절은 왜 그리 쓸데없이 눈물 범벅에 허영 가득이었는지, 많이 후회되지만,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다. 아무튼 나는 많이 솔직해졌다. 나이 든 선물이라면 이것이 진정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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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빠져 나와서는 다시 시내로 돌아가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진짜 동네 시장을 발견했다. 야채도 팔고 고기도 팔고 음식 파는 포장마차도 몇 개나 있었다. 운이 좋다 싶어 기분 좋게 구경하고는, 오늘은 정말 여기에서만 먹는 음식을 하나 먹어야겠다 싶었다. 포장마차를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있는데 흔한 호객행위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이거다 싶어서 고른 것이 파파야 샐러드. 이거 하나! 아주머니가 묻는다. 당연히 못 알아듣고 딴청을 피우고 있으니까 이렇게 다시 물었다.
"원 핫? 투 핫?"
아하, 얼마나 맵게 해줄까 하는거구나. 나는 기세좋게, 나는 씨x 대한민국에서 왔으니까! 하면서 기세좋게 투 핫을 외쳤다. 아주머니 역시 씩 웃으며 기세좋게 OK!를 외친다. 그리고 손절구에 뭔가를 넣고 쿵쿵 찧는다. 근데 뭔가 많이 넣는 와중에 쪼그만 고추 몇 개가 들어갈 때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것 같다. 쏘리 맴 나는 사실 일본인인데 그 핫이 뜨거운 핫인줄 알았어요.. 라고..

세 포크 정도 입으로 가져간 후에 슬쩍 버리려고 해도 '저 중국놈이 매운거 얼마나 잘 먹는지 보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주머니 때문에 난 이걸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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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운 파파야 샐러드를 다 먹고 '나 다 먹었어요' 하는 표시로 싹 비운 접시를 보여준 후에야 지옥에서 탈출한 나는 맵고 속 쓰려서 정신이 없었는지 점점 길을 잃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깜깜해진 어둠 속 주택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지도도 없다.
근데 왠지, 서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괜히 무섭고 오금이 저리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군가 다가와 캔아이헬프유를 외친다면 손을 들며 돈슛미를 외칠 것 같은데(농담입니다 반쯤), 태국에서는 길을 잃어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치안 상태는 여기가 더 안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래도 이상하게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담배 꺼내물고 털레털레 걷다가 한 가게에 들어가서 여기가 어디고 메인 스트리트는 어떻게 가느냐 물으니 할머니가 영어를 하는 아주머니를 데려오고, 영어를 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묻고는 갑자기 길 가는 오토바이 청년을 세우고, 그 청년이 아주머니에게 뭐라뭐라 말을 듣어니 뒤에 타란다? 어? 왜요?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는데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오늘도 길 잃은 청년을 구했구나' 싶은 사람 좋은 미소를 3초 정도 하고 가게로 쓱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오토바이 뒤에 타니까 오토바이는 말도 없이 골목길을 세차게 달리고 달려서 날 아유타야 호텔에 쓱 내려주고, 손 한번 흔들고 다시 부르당당당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모두가 쿨하게 떠나 버리니까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보니까 특별히 '너무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고맙다는 기분이 크게 들지도 않긴 했는데, 어쩐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깊게 남는다. '친절'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내 그렇게 그리워하던 우리네 정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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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 기차를 타고 떠났다. 나도 쿨하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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