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y Bearpigs

며칠 방콕을 여행하고, 아유타야를 당일치기로 돌아보고, 라오스로 떠났다. 근데 2012년도 이제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2010년 초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까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라오스를 어떻게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찍은 사진들과 기억에 의존할 뿐인데, 그나마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 아니라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하다. 그 때 여행을 마친 2010년 3월, 그리고 약 3년 가까이 지난 시간 동안 참 힘든 일이 많았다. 뇌가 썩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뭔가 블로그에 일기라도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 수 없었다. 지금도 이 블로그에는 쓰다 만 찌꺼기들이 가득하다. 비밀글에, 임시저장한 글목록에.

아무튼 써 보기로 한다. 그 때 라오스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지 못했을 것만 같다. 긴 여행은 아니었지만 나는 참 많이 행복했다. 진심으로.

참으로 조악한 문장이지만, 그저 그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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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에서 밤 기차를 타고 우본 랏차타니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다. 솔직히 태국 기차는 잠을 못 잘것 같아서 많이 걱정했는데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타 본 어떤 밤 기차보다 잘 잤다. 개인별로 칸막이 비슷하게 되어 있어서 나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이불이나 베게도 무척 깨끗했다. 무엇보다 열차 한 량 전체가 오픈되어 있고 아랫층 하나 윗층 하나 침대 하나씩 칸막이가 있는 식이어서 답답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가격적으로는 비교 조차 되지 않는 유럽 쿠셋을 생각하면(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거기는 컴파트먼트라고 해서 좁은 방에 침대 4~6개를 두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는데, 이 때 코 고는 사람이 있다든가 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상당히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근데 이 기차는 공간이 넓기도 하거니와 기차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있어서 코 고는 사람은 꽤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신경 끄면 들리지 않았다.

우본 랏차타니는 태국 동쪽 끝에 있는 제법 큰 도시다.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 하는 식으로 이싼 지방이라고 하는데, 제법 큰 도시라고 해도 방콕이나 아유타야 비하면 많이 낙후된 느낌이 났다. 기차역부터 뭔가 낡아 보이고 트럭 개조한 이상한 탈것이 돌아다니고 흙길도 많고... 나중에 라오스 가서는 놀랍도록 오래된 시골 풍경을 보게 되지만 말이다.

그 트럭 개조한 탈것은 썽태우라고 하는데, 이렇게 생겼다.


기차역에서 밖으로 나와서 나는 일단 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버스 터미널도 두 군데인가 있는 제법 큰 도시여서 혹시 터미널을 잘못 찾아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썽태우 기사 아저씨가 많이 도와주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고 기사 아저씨한테 버스터미널을 묻고 뒷쪽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출발 직전에 나를 끄집어 내어 운전석 옆 자리에 태웠다. 저번에 아유타야에서 그랬던 것 처럼, 그냥 밑도 끝도 없이, 특별히 친절을 베푼다는 뉘앙스 같은 것 없이 그냥 무작정 앉으란다. 썽태우는 곳곳에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면서 달렸다. 나중에 보니 대략적인 노선은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승객이 원하는 곳이 노선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도 그냥 가기도 하고 그러는 모양인데, 근데 이 썽태우 마지막 승객을 내려놓고는 좀 많이 달렸다. 짐작컨데 이 관광객이 버스 터미널 간다니까 가는 길은 아니지만 그냥 좀 돌더라도 데려다 주겠다는 호의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다. 거의 10분 정도를 달려 썽태우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는 배낭을 메고 폴짝 뛰어내려 요금을 치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아저씨 씩 웃어주고는 또 부루당당당당 떠나 버린다. 아.. 건강하시길.

그리고 우본 랏차타니 버스 터미널, 북 터미널인지 남 터미널인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태국 외 주요 국가 이동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 특히 태사랑에 잘 나와 있으니까 참고하시길. 가이드북 백번 펄럭여봐야 태사랑에서 미리 검색해 가는 것이 최고다. 태국 전역에서 인터넷이나 와이파이가 되니까(장담컨데 어느 후미진 산골짜기를 들어가더라도 그 곳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면 거의 반드시 된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가져간다면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본 랏차타니에서도 라오스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돈 아끼려면 또 그에 맞는 수 많은 방법이 있지만 나는 적당히 편하고 적당히 저렴한 방법을 택했다. 우본 랏차타니에서 라오스 남부 도시 빡쎄로 직행하는 버스인데, 가격이 제법 비싸서(2만원 정도 했던가) 현지인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버스는 우본 랏차타니 버스 터미널을 출발해서 태국과 라오스 국경 마을인 총멕까지 가고, 그 곳에서 라오스 입국심사를 마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1시간 뒤에 다시 승객들을 태워서 라오스 남부의 빡쎄까지 간다. 이름은 좀 그런데 여기까지 가는 길은 별로 빡쎄지 않다.

버스 터미널에는 이런 식당이 있어서


대충 골라 먹은 것이 이런 것인데, 선지국이랑 밥이다.
처음 나왔을 때는 우웩 했는데 먹다 보니 소고기국 같고 매콤해서 맛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서양인들로 가득 차서 오랜만에 그리운 유럽 암내를 실컷 맡을 수 있었다. 비싼 버스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그냥 우리나라 10년 전 일반 좌석버스 수준이다.

두어 시간 달려 도착한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이라는 총멕에 도착하면 간단한(몇 초 걸리지 않는다) 입국심사를 하고 환전을 했다. 라오스 돈은 '낍'이라고 하는데 US 1달러가 약 10000낍이다. 간단히 계산하면 천원이 만 낍, 백원이 천 낍 정도인데, 로컬 식당에서 쌀국수 한 그릇 먹으면 약 5000낍, 여행자 식당에서 먹으면 대충 10000낍, 시설 적당한 게스트하우스 1박 하려면 4~50000낍 정도였다. US 100달러 정도 바꾸면 지폐를 지갑이 터져나가도록 수두룩하게 준다.

그리고는 면세점에 가서 화장실을 잠깐 쓰고 벤치에 걸터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떠나기를 같이 버스 타고 온 일본 아이들도 지루한지 재떨이에 담배 꽃을 만들어 놓고 있었고, 나는 깊은 한숨이 푹 나왔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러 이 짓을 하고 있나... 뭐 대부분은 짧은 회한으로 끝나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세시간 정도 달려 빡쎄에 도착한다. 참고로 이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반복한다.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린다. 별로 재미는 없는 얘기다.

빡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다시 뚝뚝(이건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너댓사람 타고 갈 수 있게 만든 택시 같은거다)을 타고 씨판돈 가는 썽태우 터미널까지 간다.

자리가 없어서 옆에 매달려서 갔다. 그래도 값은 똑같이 받는다



빡쎄에 도착해서도 기분이 좀 그랬는데, 썽태우 터미널 도착하니 아 세상에 이런 시골이 있나 싶은 기분이었다. 왠 흙먼지 가득한 공터에 내려주더니 여기가 터미널이라고 해서 내렸는데 저 옆에서 염소 너댓마리를 낑낑대며 썽태우 짐칸에 올리고 있질 않나, 일부러 투어를 신청해야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밀짚모자에 소쿠리 낀 라오스 여인이 몇 명이나 보이질 않나. 솔직히 말해서 40년 정도는 타임워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게 라오스구나 싶은 기분이 이는 흙먼지 따라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왠지 흥분되고 짜릿하다.

이런 곳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트럭에 좌석이 세 줄이나 있는데다가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싣고 가야 한다고 가운데 좌석을 빼 버렸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 날 긴 여행의 목적지인 씨판돈은 라오스 말로 사천 개의 섬이라는 뜻으로, '씨판'이 4000이고 '돈'이 섬이다. 메콩강 줄기에 크고 작은 섬이 수 없이 많이 있는데 그 지역을 이렇게 부른다. 라오스의 최남단으로 조금만 밑으로 가면 캄보디아다. 정확히는 씨판돈 지역의 돈콩이라 불리는 섬에 간다.

보통 빡쎄를 통해서 라오스에 도착하면 남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짬빠싹 정도를 구경한 후에 비엔티안,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으로 가기 마련인데 나는 더 남쪽에 있는 씨판돈을 갔다가 짬빠싹에 들러 다시 빡쎄를 거치는 조금 비효율적인 루트를 택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좋다고 하는 곳은 다 가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욕심 때문에, 전 날 야간열차부터 시작해서 근 15시간째 이동중인 나는 그 후로도 다섯 시간은 족히 이동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 비좁은 썽태우를 타고 다섯 시간이나 가야 하는 것이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눈 앞에 펼처지는 이국적이고 오래된 풍경에 흥분된 것도 잠시, 이제 이 트럭이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 쯤에는 내 다리가 굳어서 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찰나...... 출발 직전에 썽태우 기사가 또 나를 콕 찝어 불러서 자기 옆에 태웠다. 아무튼 이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 놈 엉덩이가 다른 사람 두 배니까 앞에 앉혀야겠다는 판단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덕에, 몸도 마음도 한결 한가로운 라오스 여행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4 by Bearpigs

이글거리는 태양이 사그라지고 하늘이 예쁘게 물들 즈음에야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더운 건 정말 못 참는다.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로 향할 때 그 상쾌한 기분으로는 '오늘 아유타야를 정복하고 말겠어 기다려 아유타야' 이러고 있었는데, 그냥 보고 싶은 것 하나만 보고 대충 시간을 때우자는, 플랜G쯤 되는 급선회를 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갖 여행기를 찾아 읽던 시절에 읽었던 한 여행기가 있었는데, 그 저자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팜플렛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며 소개한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한다. '애잔'하다고. 난 이때 애잔하다는 표현을 처음 배워서 나중에 뭔가 서정적인 표현을 써야겠다 싶으면 십중 일곱 정도는 '애잔'을 남발하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에게 있어 '애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유물이 아유타야에 있었다.

실제로 보니 그리 애잔하던가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았다 대답해야겠지만, 아마 그 때 꼬꼬마 시절에 일부러 아유타야를 찾아가 내 가진 '애잔'함의 원형을 이렇게 목격했더라면 아마 나는 실제로 감동하지는 않더라도 눈물을 흘리려 부단히 노력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 어렸던 시절은 왜 그리 쓸데없이 눈물 범벅에 허영 가득이었는지, 많이 후회되지만,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다. 아무튼 나는 많이 솔직해졌다. 나이 든 선물이라면 이것이 진정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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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빠져 나와서는 다시 시내로 돌아가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진짜 동네 시장을 발견했다. 야채도 팔고 고기도 팔고 음식 파는 포장마차도 몇 개나 있었다. 운이 좋다 싶어 기분 좋게 구경하고는, 오늘은 정말 여기에서만 먹는 음식을 하나 먹어야겠다 싶었다. 포장마차를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있는데 흔한 호객행위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이거다 싶어서 고른 것이 파파야 샐러드. 이거 하나! 아주머니가 묻는다. 당연히 못 알아듣고 딴청을 피우고 있으니까 이렇게 다시 물었다.

"원 핫? 투 핫?"

아하, 얼마나 맵게 해줄까 하는거구나. 나는 기세좋게, 나는 씨x 대한민국에서 왔으니까! 하면서 기세좋게 투 핫을 외쳤다. 아주머니 역시 씩 웃으며 기세좋게 OK!를 외친다. 그리고 손절구에 뭔가를 넣고 쿵쿵 찧는다. 근데 뭔가 많이 넣는 와중에 쪼그만 고추 몇 개가 들어갈 때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것 같다. 쏘리 맴 나는 사실 일본인인데 그 핫이 뜨거운 핫인줄 알았어요.. 라고..

얼마나 매웠냐면.. 아 몰라 상상하기도 싫어



세 포크 정도 입으로 가져간 후에 슬쩍 버리려고 해도 '저 중국놈이 매운거 얼마나 잘 먹는지 보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주머니 때문에 난 이걸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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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운 파파야 샐러드를 다 먹고 '나 다 먹었어요' 하는 표시로 싹 비운 접시를 보여준 후에야 지옥에서 탈출한 나는 맵고 속 쓰려서 정신이 없었는지 점점 길을 잃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깜깜해진 어둠 속 주택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지도도 없다.

근데 왠지, 서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괜히 무섭고 오금이 저리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누군가 다가와 캔아이헬프유를 외친다면 손을 들며 돈슛미를 외칠 것 같은데(농담입니다 반쯤), 태국에서는 길을 잃어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치안 상태는 여기가 더 안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래도 이상하게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담배 꺼내물고 털레털레 걷다가 한 가게에 들어가서 여기가 어디고 메인 스트리트는 어떻게 가느냐 물으니 할머니가 영어를 하는 아주머니를 데려오고, 영어를 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묻고는 갑자기 길 가는 오토바이 청년을 세우고, 그 청년이 아주머니에게 뭐라뭐라 말을 듣어니 뒤에 타란다? 어? 왜요?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는데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오늘도 길 잃은 청년을 구했구나' 싶은 사람 좋은 미소를 3초 정도 하고 가게로 쓱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오토바이 뒤에 타니까 오토바이는 말도 없이 골목길을 세차게 달리고 달려서 날 아유타야 호텔에 쓱 내려주고, 손 한번 흔들고 다시 부르당당당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모두가 쿨하게 떠나 버리니까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보니까 특별히 '너무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고맙다는 기분이 크게 들지도 않긴 했는데, 어쩐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깊게 남는다. '친절'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내 그렇게 그리워하던 우리네 정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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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 기차를 타고 떠났다. 나도 쿨하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3 by Bearpigs

방콕에서 라오스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캄보디아를 거쳐서 라오스 남쪽으로 들어가볼까 하다가 앙코르와트 구경하는게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바로 라오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총멕을 거쳐 빡쎄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방콕에서 태국 서부 이싼 지방의 우본 랏차타니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버스터미널에서 빡쎄로 바로 가는 관광객용 국경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버스는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총멕에서 잠깐 서고, 라오스 입국심사를 마친 후에 다시 승객을 태워서 달린다. 그리고 빡쎄에 도착하면 여기서부터 라오스인데 끝난 것이 아니고 썽태우를 골라 잡아서 다시 씨판돈까지 이동한다. 그리하여 저녁에야 돈콩에 도착했으니, 야간 이동을 포함해서 20시간 가까이 달려갔다.

방콕을 떠나기 날 아침에 나는 다소 우울했다. 우본 랏차타니까지 가는 야간열차를 타려면 어차피 밤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방콕에는 더 있기 싫었던 까닭이다. 방콕을 폄하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로,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런 대도시 속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무척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돈이라도 듬뿍 가지고 있으면 아주 호화찬란하게 여행하는 재미라도 있을텐데(방콕은 특급 호텔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쇼핑센터도 많아서 이런 식으로 여행한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 그런 것도 아니고, 많이 기대했던 카오산 로드라는 곳은 확실하게 실망스러웠고.

고민을 좀 하다 보니 아유타야에 가서 하루종일 놀다가 거기에서 바로 우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되겠구나 싶었다. 아, 역시 난 대단해. 이런 루트를 생각해 내다니 운운하는 자뻑에 심취하여 아침식사를 먹고 바로 배낭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방콕에 좀 질려있어서 그랬는지 묵직하니 배낭을 매고 떠나는 발걸음을 걷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무척이나 가벼워졌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기차역에 가서 아유타야로 가는 좌석, 그리고 아유타야에서 우본랏차타니까지 가는 침대칸 하나를 산다. 방콕과 아유타야는 그리 멀지 않아서 기차로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릴 뿐이고, 택시를 타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돈에 여유가 있고 동행이 있다면 택시 타고 손쉽게 왔다갔다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것 보다는 기차가 훨씬 재미있다. 그것도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통근열차를 타면 훨씬 재미가 있다. 가격도 15밧(약 550원) 정도로 놀랄만큼 싸다. 우본랏차타니까지 가는 침대칸은 등급에 따라 에어컨의 유무에 따라 1층이냐 2층이냐에 따라서 가격이 좀 다르고, 좌석도 있는데 그건 훨씬 싸다. 하지만 긴 이동이니까 왠만하면 침대를 이용하도록 하자. 내가 산 것은 아유타야에서 우본 랏차타니로 가는 에어컨이 있는 2등석 침대칸 윗층이었고 가격은 600밧이 좀 넘었다.

생각도 못한 푼돈으로 기차를 타게 되어서 그랬는지 기분이 금새 좋아졌다. 열차는 많이 낡았고 좌석도 넓은 편이 못 되었지만 그 만큼 사람 냄새가 났다. 절반 이상이 현지인들이고 아유타야로 가는 관광객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운 좋게 넓은 자리를 찾아서 배낭을 턱 내려놓고 앉으니 곧 열차가 출발했고, 콘크리트 풍경은 순식간에 퍼런 들판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오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맞은 편에 앉은 부부




아유타야 역과 시내 사이에는 강이 하나 있어서 보트를 타고 건넌다.




아유타야는 더웠다. 진짜로 더웠다. 방콕도 더웠지만 아유타야는 약 5도 정도 더 높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작 완행열차로 1시간 거리인데! 멀리 쳐다보면 뭔가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10분을 좀 넘게 걸으니까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고 팔 언저리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여행기에 등장했던 한 부부는, 홍콩에 도착해서 낮에는 호텔에서 자고 저녁 때 즈음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와 홍콩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이유는 그저 더워서.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허, 이런 사치가 다 있네'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아유타야에 도착해 보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잃어서 한 시간 정도 길을 헤메다가 다시 시내 중심가로 돌아오고 나니까 정말로 정신이 없어졌다. 눈에 띄는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서 나는 여기 숙박객이요 하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로비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세수를 5분 정도 하고 나니까 좀 정신이 들었다. 아유타야는 경주 같은 곳이라니까 여기 유적지를 전부 둘러보고 라오스로 떠나는거야 했던 야심찬 계획은 세숫물과 함께 배수구로 빨려들어갔고, 나는 좀 시원해질 때 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호텔 화장실을 나와서는 맥주를 마셨고, 맥주를 마시고 나서는 우체국에 가서 여자친구에게 엽서를 하나 부쳤고, 그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고, 그 다음에는 시장 골목을 되도록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겨우 햇빛이 사그라진 것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이상하게 잘라놓아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다. 분명 미용실 들어가기 전에는 모두가 나에게 영어를 했는데 미용실을 나오고 나니까 모두가 나에게 태국말을 했다. 머리를 이렇게 잘라놓고는 '아 오늘의 작품도 훌륭했어'라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짓고 있던 미용사 아저씨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때 그 머리를 하고 미용실을 나왔더라면 정말로 후회했을 것이다. 뒷머리는 길게 남겨놓고 머리 윗부분은 반듯하게 네모로 잘라놓은, 말하자면 맥가이버 머리의 현대식 해석은 개뿔. 나는 되는 영어와 바디랭귀지, 가이드북에서 본 태국어 전부를 섞어 필사적으로 다시 잘라달라는 의사를 표현했고, 그런 내 모습이 무지하게 웃겼는지(웃기긴 했을 것이다) 미용사 보조하는 아가씨는 10분을 넘게 웃었고, 미용사 아저씨는 뚱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다시 잘라주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 아는 머리가 그거 하나밖에 없었는지 어쨌는지 수정본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계속 그 머리를 하고 라오스랑 태국을 쏘다녔고, 나중에는 한 한국인 아저씨한테 라오스말을 좀 배워서 쓰고 다니니까 다들 나를 현지인이나 여기 사는 중국인 쯤으로 봤다.

2 by Bearpigs

기본적으로는 라오스를 가 보려고 했던 여행이지만 태국은 어차피 들러야 했고, 방콕이라는 곳도 좀 궁금하긴 했다. 예로부터 여행자들은 카오산 로드에 모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후! 일단 방콕에서 3-4일 지내다가 기차를 타고 라오스로. 이런 계획을 세워 놓았다. 자세한 이동방법은 잘 몰랐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든 됐다.

비행 시간은 다섯 시간 정도였으니까, 음악 듣다가 닌텐도좀 하다가 메모좀 하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기내식은 별 맛이 없었던 기억이다. 기내 시설도 별로 훌륭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서비스도 뭐 그다지.. 하지만 별로 신경이 안 쓰였던 것이, 어릴 때는 기내식이 어쩌고 개인 모니터가 어쩌고 난리를 쳤는데 이제는 그런 것 보단 그냥 안전하게 빨리 가 주는 것이 최고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방콕에 도착하는 마당에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방콕에 도착해서는 길고 길고 기-인 통로를 빠져나와 짐을 찾고 출국장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카오산 로드로 갔다.

방콕은 지금까지 갔던 어떤 곳 보다 훨씬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겼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그랬다는 얘기도 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이국적인 향취가 났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더운 기운도 그랬거니와, 자스민 향인지 아니면 이 곳 쌀 냄새인지 모를, 정말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태국 냄새'가 났다. 도심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고,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공항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이런 향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향은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진해졌고, 시장 언저리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그야말로 코를 찔렀다. 솔직히 둘째 날 까지는 이 냄새가 거북해서 밥 먹기가 힘들 지경이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까 익숙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 냄새가 제일 그립다.

사실, 방콕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첫 날 카오산 로드에 도착해서 한 번도 안 헤매고 샴센으로 들어가 무척 간단하게 숙소를 잡았고, 너무너무 더웠기에 샤워를 했고, 카오산 로드에 가서 흐느적흐느적 돌아다니고 실망을 많이 했다. 카오산 로드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가 예전에는 어땠는지 알 턱은 없고, 그냥 시끄럽고 번잡하고 호프집과 식당이 즐비하고 맥도날드랑 버거킹이 있는, 그리고 밤이 되면 전 세계의 반바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x100 시끄러워지는 곳이었다. 차라리 마리화나 하쉬쉬 파는 무서운 아저씨들이 즐비한 뒷골목 느낌이었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대충 봐서는 그냥 관광지다. 과일 깎아 파는 청년들만 넘쳐난다. 좀 더 시간을 들여 방콕에 있었다면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한테는 그냥 그랬다.

카오산로드는 대충 이런 모습




숙소가 있던 샴센의 거리 풍경은 그야말로 '방콕의 뒷골목' 스러웠다.
조용하고 차분한데, 그저 차분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활력이 있다.



그 후 방콕에서 3일 정도 지내면서, 처음 이틀은 열심히 관광을 하다가 금방 지쳐버린 탓에(역시 유적지 및 사원 방문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마지막 하루는 쇼핑센터를 전전하며 에어컨을 쐬며 아이스 커피를 빨면서 된장남 행세를 했고,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아유타야를 거쳐 라오스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이런 연유로, 방콕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 만난 사람도 없고 뭐.. 맛난 음식도 못 먹었고... 아무튼 방콕은 너무나 거대해서 짧은 일정으로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다. 생각보다 물가도 비싸서 한국보다 싸다고 웃다보면 나중에 허리가 살짝 휜다. 나중에 찾게 된다면 오래 시간을 두고 돌아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방콕이란, 익사이팅한 것은 확실한데, 내 경우에는 익사이팅 보다는 그냥 '우워워~~~~~~~~~~~~~!!!!'하는 느낌을 주로 받아와서 좀 아쉽다.

음.. 이런 엽서 사진은 되도록 안 찍고 싶어도 옆에서 찍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찍게 된다




방콕의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다. 나도 한 번 당했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숙소까지 걸어가다가
한 시간 후에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뻔했다

1 by Bearpigs

여행의 시작부터 행운이 따른다는 것은 의외로 불안한 일이었다.

왠만한 행운 같으면 그냥 오늘 재수 좋다면서 넘길 수 있는데, 그런 것이 하나 둘 겹치다보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공항에서는 단 한 번도 운이 좋았던 일이 없는데! 그런데 이 여행에서는 이상하게 운이 좋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팅 마치고 핸드폰을 로밍하려고 센터를 찾아갔는데 마침 어제부터 행사 기간이라면서 한 달이면 거의 6만원에 가까운 로밍 핸드폰 임대 비용을 무료로 처리해 주었다. 사실 2G 핸드폰 쓰면 3G 핸드폰을 빌려야 했는데 그 임대 비용이 만만찮아서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쌔끈한 신품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된 것도 얼떨떨했는데, 글쎄 천사같이 친절한 SK텔레콤의 직원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방콕가면 사야겠다 싶었던)치약과 칫솔까지 선물로 주고 난리였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싼 티켓을 구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비행기 시간이 좀 애매한 편이었는데, 인천에서 홍콩으로, 그리고 홍콩에서 1시간 후에 갈아타서 저녁 6시가 넘어 방콕에 도착하는 티켓으로 공항 빠져나가고 숙소 잡고 하면 거의 9시나 되어야 숨을 돌릴 예정이었다. 아무튼 나는, 혹시 밤 늦게 떨어지면 위험하지 않나 숙소 예약하고 갈걸 그랬나 하면서 걱정을 하면서 티켓팅을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는데, 줄이 반 정도 줄었을 무렵 타이항공 직원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혹시 방콕 가시나요?" 아니 공항에도 암표상이 있는 것인가? 하면서 어브버.. 네.. 했는데 1시간 일찍 탑승하는 다른 비행기편에 자리가 비어서 혼자 간다면 바꿔준단다. 얼떨결에 그 긴 줄을 바로 통과해서 티켓팅을 했는데, 탑승권을 한 장 밖에 안 준다. 어브버.. 하면서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직항이란다. 오메.. 대신에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면세점 쇼핑은 자제하시고 지금 탑승구로 가셔야 한단다. 아니 그건 뭐 별건 아닌데, 돈 더 내야 하는 건 아니죠? 하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내가 얼마나 얼떨떨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좌석은 벌크시트였고,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방콕에는 무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숙소만 빨리 구한다면 이른 저녁부터 설렁설렁 나가서 구경해도 카오산로드 주변은 실컷 구경할 수 있는 신세가 된거다. 아, 이것 참 좋구나 싶으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여행의 운 전부를 첫 날에 홀랑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서.

이래저래 참 의심이 많아서 살기 피곤하겠다 싶을텐데, 이런 것 정도는 그냥 헤벌레 웃으며 즐기고 싶어도 나는 그럴 형편은 못 되었다. 앞으로 몇십년이 지난다고 해도 분명히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끔찍했던 2009년을 지내면서 나는 많이 약해진 것이다. 2009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아무튼 끔찍했다. 다시는 그런 한 해 비슷한 것이라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스스로 강해지자고 다짐했던 것이 수천 번이라면 스스로 약해졌다고 자각하는 것도 수천 번이 넘었고, 의식하지도 못한 채 흘러갔던 무기력한 시간들은 그 시간 단위를 세기조차 힘들다. 아무튼, 그런 2009년이 기어코 끝나버렸고, 나는 팔자에도 없는 새해 첫 해를 보러 동네 뒷산에 새벽 산책까지 가면서 2010년에는 부디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2010년을 맞아서 기적적으로 무언가가 달라지긴 했다. 나는 지금까지 먹구름처럼 무겁게 떠다니던 내 마음을, 생각을, 관념 비슷한 것을 돌이켜 반성하고 훌 떨쳐버리기로 했다. 미래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당장 닥친 일에 발을 담그는 것이 결과적으로도 더 마음 편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여행은 깨끗하게 접었다. 사실상 그럴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거니와, 내가 정말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혼자서 무려 세계여행씩이나 해 본 멋쟁이'라는 칭호를 얻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접었다고 하면 후회가 엄청났겠지만, 그저 스스로 키우고 있었던 욕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납득해서 내린 결론이기에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그렇게, 2010년이 되어서, 이런저런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힘 내려고. 별로 준비도 하지 않았고 여행지를 고르는데 크게 고민도 하지 않았다.

여행지를 태국과 라오스로 결정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여행비용이 비교적 싸서. 두 번째로 이왕이면 지금껏 가 본 일이 없는 곳을 여행하고 싶어서. 다른 후보지도 몇 군데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마음 속에 남은 곳은 노르웨이의 노르캅, 탄자니아와 케냐, 그리고 라오스였다. 세 곳 모두 괜찮은 여행지였고 장단점이 있었는데 왠지 라오스가 가장 고생을 덜 하게 될 것 같았다. 2010년이 되어 나는 정말이지 기적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솔직히 겁이 나서 몸을 사린 셈이다. 이렇게 결정한 것이 여행을 떠나기 약 10일 전이다.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것은 약 1주일 전, 라오스라는 곳이 당췌 어떤 곳인가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5일 전쯤이다. 누군가 본다면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찰 정도로 대책이 없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으나, 치밀한 준비가 꼭 즐거운 여행과 맞닿아 있지는 않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리고 어차피, 라오스를 여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 비슷한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별 문제가 없었을거다. 다시 말해 내 목적은, 그저 어딘가 처음 보는 곳에 가서 설렁설렁 걸으면서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면서 많이 망가진 내 마음에 약을 좀 바르고 돌아오는 것. 라오스라는 여행지는 그저 그를 위한 수단,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약간은 부정한 여행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거다. 여행의 정의, 진실, 의미 같은 것이 어딘가에 아직도 순수한 채로 남아있다면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번 만큼은 진지한 고뇌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정말 가벼운 여행자가 되어 흐느적대고만 싶었다. 그 뿐이다.

그런데, 태국 방콕으로 곧바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불안의 기운은, 스멀스멀 잔개미처럼 등허리를 감싸고 올라와서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저 나는, 가볍게 떠나고 싶었던 것이지만, 사실은 무척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가지고 간 짐은 초라할 정도로 단촐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짐을 가지고 가는지도 모른다. 모른다가 아니라, 사실은 그랬다. 다시 시작하려면, 힘을 내려면, 반드시 버려야 할 먹구름, 뭐 그런 것.

그래서 나는 첫 날의 행운이 두려웠던 것 같다.
저기 말이야, 딴 건 모르겠고 그냥 비행기 티켓이나 바꿔줄게-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여행기 흉년 by 또만나요

여행기가 흉년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당췌 읽을만한 여행기가 없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출판되는 책들까지, 펼쳐놓고 읽다 보면 금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답답한 내 마음 때문에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누군가 여행기를 읽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기란 이렇다. 자신의 기분이 어땠는가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여정이 어땠는가(혹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주로 말해야 한다. 하지만 여행기를 쓰는 것과 여행 일기를 쓰는 것을 착각하면 참으로 곤란하다. 자신이 겪은 여정은 물론 무엇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한 기억이겠지만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전부 적어버릴 필요는 없다. 이야기하는 본인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자신을 마치 현지인이양 그 속에 완전히 녹아든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만인 것이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상에 대해서는 여행지에 도착하여 걷고 떠나는 발걸음을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발 디딘 곳을, 그 곳의 사람들은 포근하게 바라보는 눈길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그런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진정 포근한 눈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눈가 근육을 포근하게 만들어 바라본 것 뿐이었는지에 대한 것은 어떻게든 속일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진을 많이 줄이고 글 자체에 집중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진집이 아닌 이상에야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을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다고 요즘 많이 나오는 사진 가득한 여행 이야기 책들에 실린 그것들이 그렇게나 퀄리티가 높은가, 하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 사진만 주욱 펼쳐놓는 여행기를 보는 것은 인터넷에 지천인 개인 블로그에서도 충분하다. 사진을 위한답시고 전체 컬러로 고급스럽게 인쇄되어봐야 그저 책 가격만 높아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돈 주고 사서)읽은 여행기 중에 가장 심각했던 책이 한 권 있는데, 위에 말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며, 사진은 건질만한 것이 1/10 정도 되고, 올컬러에 매끈한 코팅지를 써서 종이질은 좋아 보이지만 책이 무지 무겁고, 그런고로 상당히 비싸다. 거기에다가 글자체까지 일반적인 책에 쓰이는 것과 다르고, 글자 간격을 손대서 양을 상당히 부풀렸다. 좀 치사해 보인다. 최근 내가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들을 펼쳐 보다가 느낀 불안감은 이런 것이었다. 그 때 그 책을 꾸역꾸역 읽으면서 느낀 답답함, 불쾌함, 무료함 같은 것들을 데자뷰처럼 돌이켜 버린 것이다. 만약 이 책을 돈 주고 산다면 돈 주고 산 최악의 여행기 1위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할 수 있겠구나 싶은 것들이 무려 두 권이나 있었고, 다른 책들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괜히 흉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한 때 황금기가 있었다. 서점에 가면 읽고 싶고 가지고 싶은 멋진 여행기들이 가득했고, 일부러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대충 느낌이 괜찮은 것을 집어와도 왠만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좋은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는 류시화의 인도 이야기가 거짓말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 책을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즐겁게 꿈꾸게 해 주었으니까. 여행기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고 생각한다. 여행기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현재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는 자체로 짜릿하고 즐거운 멋진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 여행기를 써 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여행기를 읽고 꿈꾸는 그 감각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나는 아마 평생을 두고 그리게 될 것이다.


세라비 by Crystal

지난 몇 달 동안 안 좋은 일들이 좀 있었다. 사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 슬슬 바닥을 친 것이 아닌가 싶다. 주식 같으면 이제 바닥이구나 싶어서 질러 놓으면 항상 지하실이 몇 개 더 있긴 하더라만(지금도 그렇게 물려있는 놈이 있다), 아무튼 이제 더 무너질 것은 없을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그 동안 꿈꾸며 바라던 것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말도 된다. 건강도 좋지 않고, 사랑도 이제는 없고, 돈도 없고, 여행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은 감기까지 걸려서 병색이 완연하다. 여행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사실 주식 빼고 통장 전부 정리하고 몇 군데서 돈을 조금만 빌리면 짧게 6개월 정도(원래 생각하던 세계 여행 계획은 최소 2년이었다) 다녀올 수 있는 여행 비용은 당장 마련할 수 있는데, 집안 사정이 안 좋게 되어 집을 떠나기가 힘들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고, 그래서 결국 욕심을 많이 줄여서 비용 면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다녀와도 만족할 수 있도록 마음을 많이 정리했는데, 결국 가족의 굴레가 문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세라비. 인생은 이런거지. 근데 요즘 들어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아무튼, 고민을 많이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청년 실업자 타이틀을 달게 된 기념 삼아서, 언제까지고 무너져 있기에는 당장 현실적으로 급한 것들이 많기도 하니까, 무너져 버린 마음은 가루가 되어 날아가도록 놔 두고, 다시 무언가 그러모아 쌓아가 보기로 했다. 당장 취직부터 급하게 되어서 일단 영어공부부터 하기로 했고, 영어 실력이 올해 안에 눈부시게 오를 리는 없을테니 일단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매일 밤마다 일자리 구하는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다. 당장 마땅히 할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보다 보면 괜찮은 일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이것조차 만만치 않아 보여서 무섭다. 조금 괜찮아 보이는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해 보면 열에 여덟은 여자만 구한다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나머지 둘은 이미 자리가 찼다는 둥. 업주들은 왜 그렇게 여성 직원을 선호하는 것일까? 물론 매장 판매원이나 전화 상담직에 여성을 쓰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자료 입력과 문서 수발하는 일에 남성이 문제가 될 이유가.. 뭐, 잘 되겠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섭게 살이 찌는 편이라서 요 몇 달 동안 몸무게가 상당히 늘었다. 살찐 자의 권리를 외치며 몸무게를 유지해볼까 싶은 마음도 들긴 했지만, 늘어버린 몸무게가 건강 악화에 일조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어쩔 수가 없다. 오래 살고 싶다. 담배도 끊을까 싶었는데 흡연자의 권리는 조금만 더 외쳐보련다. 대신에 돈도 없고 하니까 좀 줄여봐야지 하는 생각은 한다.

그리고 이 블로그를 공책 삼아 너절한 내뱉음이라도 자주 써 보려고 한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무너져 버렸다 하더라도, 글 쓰는 것 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당장 소설가가 되겠다 하고 말하고 다니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되겠지 생각하는 것 보다 조금씩이라도 써 나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동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고 쓰고 싶은 문장도 참 많았는데, 머리가 어지러운 까닭인지 마음이 위축된 까닭인지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았고 무언가 써내려 간다고 해도 마지막 한 점을 찍지 못하고 멈춰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쓰다가 못 쓰겠으면 중간에 끊긴 상태에서 대충 올려버릴까도 싶다. 어차피 개인 블로그고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으니 부담 될 것도 없다, 고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좋은 글도 나오겠지.

굳게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쓰고 있는 글 같지만
사실은 정신이 없다. 갑자기 눈 앞에 닥친 것들이 있는데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어안이 벙벙하다. 아마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몸을 실제로 움직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이렇게 글로 써서라도 일단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 되겠지 뭐..
그쵸.

제주 올레에 다녀왔습니다 by Crystal

지난 일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7일 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왔습니다.

어디든 그저 걷기만 하는 것으로도 기분이 많이 편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제주도가 그렇게 아름다운 섬일지는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하루에 일곱 시간, 어떤 날은 아홉 시간도 넘게 걸으면서 수 없는 시간 동안 바다를 보고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고, 걷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적당한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터벅터벅 걸어갔던 일주일이었습니다. 왼쪽 발에 인대가 살짝 늘어나서 시큰거리고 양쪽 무릎이 부들거리면서 아프고, 크고 작은 물집 두 개가 양쪽 발에, 약간의 근육통, 선크림을 잊은 날에 얼굴이 타서 끈적한 진물이 손가락에 묻어나오기도 했어요. 참 약했지요. 이 정도로 약한 몸일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걷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은, 바로 그 길의 풍경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이었던가, 우연하게 만나 같이 걷던 누군가 묻더라구요. 올레는 왜 오셨어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쉽게 대답하고 말았지요. 그냥 걷는 것을 좋아해서요. 올레 걸어보니까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역시 쉽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쉽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어요. 네. 그리고 그저 한 번 웃어줄 뿐이었지요. 예쁜 미소였을지 괴상하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씩 웃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가만히 바라봤어요. 어스름이 지는 저녁 무렵입니다. 수평선 언저리가 분홍빛에 물들어 있었어요. 우리는 길게 뻗은 해안가 길에 서 있었지요. 발 밑으로는 바다가 철썩이고 길 옆으로는 숨 막히도록 흐드러진 유채꽃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갈대가 바람 부는 모양 그대로 흔들리고 있었어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상상도 가지 않을 기분이 들 정도로
정말, 말도 못하게, 좋았지요.

발걸음 하나 내쉬는 숨 하나마다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마음들이 사무치도록 아련한 날들이었습니다. 
발 아래에 어린 풀이 자박자박 밟혔고, 바람이 시리게 불었죠. 그리고 흙 냄새가 시골길에 가득했습니다.

아픔의 작은 흔적 by Crystal

나는 요 몇 달간 여기저기가 아팠다. 큰 수술을 했던 것이 아니고 긴 시간 동안의 재활치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잘하게 여러 곳이 지끈지끈 아프면서 몇 달을 지내왔다. 지난 2008년 찬 바람이 불 때 쯤 시작하여 바로 요 며칠 전 까지, 입 안 구석구석과 팔 다리와 머릿 속이 아팠다. 누구에게 말 할 거리도 안 되는 자잘한 고통이었지만, 그래서 쉴 수 없었고 그래서 울어버릴 수 없었기에 더욱 아팠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 아픔이 사라진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것 처럼 편도선이 거대하게 부은 것을 끝으로, 몇 알의 항생제와 몇 방의 진통제 주사, 그리고 몇 시간의 불면을 마지막으로 아픔은 종결했다. 이제는 그 어떤 곳도 크게 아프지 않다.

인간이 아프면 아프지 않은 상태가 얼마나 편안했던 것인가 하고 간절히 느끼지만
그 아픔이 사라지고 나면 그 때의 간절했던 마음은 아주 작은 흔적만 가슴 속에 남기고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나는 그 작은 흔적을 소중히 여겨 없어지지 않게 꼭 움켜쥐고 살아가려 한다. 무던하고 지리하게 시작했던 2009년, 그 해 최초의 다짐은 지금 3월이 되어서야 겨우 하나 이루어졌다.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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